연결(관계) 콘텐츠

2026-06-11
KakaoTalk_20250710_100156698.png
성공을 쫓는 '나'를 찾아서
현대 사회에서 '몰입'과 '열정'은 부러워하기도 하고, 존경으로 비춰질만큼 커다란 미덕으로 통용됩니다.그러나, 목표를 향한 과도한 질주는 종종 '자기 소외(Self-Alienation)'라는 그늘을 만들어냅니다.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빽빽한 일정과 과업, 성과,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우리는 ‘행위하는 존재(Doing)’로서의 기능만 남긴 채 ‘존재하는 자신(Being)’을 서서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외부의 요구와 성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동안, 정작 내면에서 보내는 지침과 공허함의 신호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외면당하게 됩니다.하루의 시간 속에서 자아를 분실한 채 일에만 함몰되는 시간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일시적인 피로를 넘어서서 내면의 피곤함은 몸과 마음에 커다란 균열을 초래하게 됩니다.심리학자 폴린 보스(Pauline Boss)가 제시한 '모호한 상실(Ambiguous Loss)'의 개념을 빌려온다면, 이는 신체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진정한 나를 상실해 버린 상태와도 같습니다. 분명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문득 찾아오는 정체성의 혼란과 깊은 고립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내 마음의 상태와 감정을 알아차릴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삶은, 결국 스스로를 주체가 아닌 과업을 수행하는 도구로 대하게 만듭니다.우리는 흔히 내가 목표한 그 일이 모두 끝나야만 비로소 자신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진정한 자기 성찰과 회복은 일과 삶의 물리적 단절이 아닌 주의를 '전환'시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이제는 일의 속도를 늦추고 내 삶의 진정한 주권을 나 자신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입니다.성공의 화려함 이면에 '자아의 상실'이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소모일뿐입니다.내가 존재하지 않는 성공은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단 3분!오롯이 자신의 호흡과 감정에 머무는 '심리적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성과라는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걸어가는 나의 내면이 건강하게 나와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2026-06-11      염희영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61
2026-06-10
(26.04.24)-17-김향숙-A컷-메인1 - 복사본.jpg
그럼에도, 시지프스의 자세로..
우리는 매일 아침 직장이라는 무대 위로 커다란 돌을 밀어 올립니다.마치 그것이 내 삶의 전부인 양, 온 힘을 다해 관계의 틈을 메우고, 성과라는 이름의 정상을 향해 발버둥 칩니다.하지만 퇴근길의 허탈함 속에, 혹은 예기치 못한 오해와 갈등 앞에서그 돌은 여지없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집니다.어제 쌓아 올린 신뢰가 오늘 한마디 말로 무너질 때, 우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관계의 피로감 속에서 깊은 무력감을 마주합니다.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는 산꼭대기로 돌을 굴려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정상에 닿으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돌을 향해 어깨를 들이밀어야 했습니다.우리의 일터와 삶 속의 관계도 어쩌면 이 잔인한 형벌을 닮아 있을지 모릅니다.이해하려 노력해도 결국 멀어지는 동료, 진심을 다해도 어긋나는 조직과의 주파수 속에서 우리는 매번 굴러떨어지는 돌을 바라보며 깊은 방황에 빠지곤 합니다.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그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이 비극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통찰합니다. 카뮈는 돌이 다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며 산을 내려가는 시지프스의 ‘그 순간’에 주목했습니다.그 하강의 시간, 자신의 운명을 똑바로 응시하는 시지프스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닌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됩니다.그는 신이 내린 형벌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다시 돌을 향해 걸어 내려감으로써 그 부조리한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이겨낸 것입니다.   우리가 관계 안에서 마주하는 성찰의 순간도 바로 이 하강의 길 위에 있습니다.노력했던 관계가 어긋나 바닥으로 툭 떨어졌을 때, 그 실패와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내가 왜 이토록 애쓰고 있었는가”를 묻고 내 안의 서툰 진심과 타인의 한계를 온전히 인정하는 순간,우리는 관계의 피해자가 아닌, 내 삶을 주도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진정한 관계의 힘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성벽을 쌓는 데 있지 않습니다.정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내일 또다시 오해가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으면서도,‘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동료를 향해 마음을 열고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그 정직한 자세에 있습니다.끝없이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우리가 매번 다르게 돌을 밀어 올릴 때,그 서툰 반복은 비로소 위대한 축적과 성장이 됩니다.   삶과 비즈니스는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돌 굴리기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오늘 당신의 돌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면, 잠시 숨을 고르십시오.그리고 그 돌을 향해 다시 걸어 내려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세요.그 하강의 길 끝에서 다시 돌에 어깨를 기댈 때, 당신은 이미 어제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해진 존재가 되어 있을 테니까요.   [성찰질문] 요즘 당신의 일터에서 자꾸만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관계의 돌'은 무엇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돌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가장 정직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2026-06-10      김향숙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55
2026-06-04
이은아-3.5-4.5web.jpg
찝찝한 꿈에 숨겨진 내면의 '나'!
가끔 유난히 생생하고찝찝한 꿈을 꾸는 날이 있죠. 아침에 일어나면 '아, 참 이상한 꿈이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꿈 해몽은 재주가 없어'라며 잊어버리곤 하죠.하지만 심리학자 칼 융은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가장 정직한 편지라고 했습니다.꿈은 의미 없는 뇌의 장난이 아닌, 내면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는 강력한 알아차림의 도구일 수 있습니다.실제로 누군가 꾸었던 두 가지 꿈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이 찝찝한 꿈들이 어떻게 성장의 열쇠가 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첫 번째 꿈의 내용]다리에 난 뾰루지를 핀셋으로 집어 올렸더니, 통통한 지렁이 같은 것이 쑥 빠져나왔습니다.예전 같으면 버렸을 텐데.... 꿈속에서는 그것을 통에 조심스럽게 담았습니다. 그리고 분석하려 했고, 남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했죠.징그러운 개꿈 같지만, 분석심리학의 관점으로 보면 엄청난 성장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꿈속에서 혐오감을 주는 벌레나 지렁이는 우리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끄러워 무의식 깊은 곳에 억눌러둔 나의 서투름과 콤플렉스일 수 있죠.이 꿈의 핵심은 그 징그러운 것을 버리지 않고 통에 담아 관찰했다는 점입니다.심리학에서는 이를 메타인지의 고도화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내 안의 어설픔을 피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수용할 만큼 단단해졌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부끄러움은 실패의 흔적이 아닙니다. 나를 바라보는 안목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두 번째 꿈의 내용] 미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수많은 가방이 쌓여 있었는데, 작은 검정 크로스백을 골랐습니다.'여권과 지갑만 딱 넣으면 되겠다. 이게 진짜 명품이지!'하며 무척 즐거워했습니다.이 꿈은 여행을 앞두고 나눈 일상의 대화에서 비롯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무의식은 심오한 메시지를 던집니다.산더미처럼 쌓인 가방들은 우리가 세상에서 짊어진 무거운 역할, 타인의 시선, 완벽주의일 수 있어요.주인공은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여권과 지갑만 담을 수 있는 작은 가방을 선택합니다.외부의 불안으로부터 삶의 진짜 본질을 지켜내겠다는 무의식의 결단으로 볼 수 있죠.화려한 스펙의 가방이 아니라, 본질을 가볍게 담아내는 투박한 가방이 진짜 명품이라는 깨달음입니다.우리의 꿈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꿈의 상징을 공식처럼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융 심리학에서 꿈의 최종적인 의미는 분석가나 이론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꿈을 꾼 당사자'의 내적 동의(아하! 하는 깨달음)에 의해 완성됩니다.보편적인 상징도 참고가 되지만, 자신의 현재 상황이나 개인적 맥락을 더해 스스로 해석해 보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고대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말했습니다. "진정으로 발전하고자 한다면, 기꺼이 서투르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감수하라."어설픔을 기꺼이 수용했기에, 무거운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본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어젯밤, 이상한 꿈을 꾸셨나요? 꿈은 내면을 비추는 유용한 거울입니다. 오늘 하루, 무의식의 메시지를 성장의 도구로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2026-06-04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14
2026-05-28
이은아-3.5-4.5web.jpg
나를 마주할 용기, 진정한 성장의 시작
무언가에 진심을 다하다 보면, 문득 '어설프다'는 생각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습니다.이 감정은 결코 감추거나 외면해야 할 실패의 징후가 아닙니다.더 뛰어난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겼거나, 내 안의 기준이 한 뼘 더 높아졌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Meta-cognition)'가 작동하는 건강한 성장의 신호입니다.나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귀한 감정이지요.지금까지 애써 쌓아온 나만의 익숙한 방식과 습관들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어려울지 모릅니다.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그 익숙함 속에서도 더 이상 나를 성장시키지 못하는 낡은 생각들을 조용히 덜어내고,그 자리에 지금의 나와 내 주변을 이롭게 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불러내는 데서 시작됩니다.그럴듯한 포장으로 부족함을 가리려 하기보다, 나의 어설픔을 기꺼이 인정하고 어떻게 채워갈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고민의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그 치열한 시간을 기꺼이 견뎌내는 사람이 어제보다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흔들림 없이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여러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2026-05-28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12
2026-05-22
사진_홍유식 1.jpg
낫토에서 배운 기다림의 미학
낫토(Nattō)는 콩을 삶아 낫토균으로 발효시킨 일본의 전통 식품이자, 세계 5대 건강 식품으로 꼽히는 슈퍼푸드입니다. 하지만 이 작고 미끈거리는 알갱이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콩을 씻어 물에 담가 하룻밤을 온전히 불리고, 무르익을 때까지 푹 삶아내야 합니다. 삶은 콩이 가장 뜨거울 때 모균을 넣어 균의 포자를 깨우고, 면포를 씌워 면밀하게 온도를 맞춘 채 다시 스무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하얀 실이 엉겨 붙기 시작하면 다시 냉장고에서 이틀간의 고요한 숙기를 거쳐야 비로소 깊은 감칠맛의 낫토가 탄생합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콩이 스스로를 바꾸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까닭입니다.인간의 삶 역시 이 낫토의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기다림'이라는 충분한 숙성이 기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 세상은 온통 속도에 열광을 합니다. 인공지능이 초고속으로 답을 찾아내고, 모든 것을 요약하며 인간의 결정을 대신해 줍니다. 부인할 수 없는 속도의 시대, 그러나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됩니다. 속도만으로는 결코 '깊음'과 '숙성'이 느껴지는 삶을 빚어낼 수 없다는 진실을 말입니다. 거친 비바람을 견디며 찰흙이 단단해지듯, 삶은 빠름의 효율이 아닌 기다림의 언저리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코칭의 현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코칭을 위해서는 다양한 대화 기법과 세련된 질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고객이 오랜 세월 감추어둔 고뇌와 고통의 블랙박스를 열 수 없습니다. 서둘러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은 코치의 조급함은, 때론 고객이 스스로를 직면해야 하는 소중한 성찰의 기회를 앗아가곤 합니다.충분히 발효된 낫토가 몸을 살리듯, 기다림이 녹아든 코칭 대화는 고객 스스로 '성찰'이라는 희열의 순간으로 인도합니다. 억지로 밤을 밀어내지 않고 새벽이 오기를 함께 앉아 기다려주는 다정한 파수꾼처럼, 코칭은 기다림의 미학을 통해 고객이 진짜 자신과 조우하게 돕는 성소(聖所)와도 같습니다.기다림은 느림도, 뒤처짐도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여는 열쇠이자, 진심과 마주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묵묵히 믿고 기다려줄 때, 삶은 어느 덧 우리에게 '소통'이라는 귀한 선물을 줄 것입니다.오늘 하루,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마트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오랜 기다림이 빚어낸 낫토의 깊은 맛을 음미하며, 묵묵히 어려움을 버텨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나직한 안부를 건네보시길 바랍니다." 조급해하지 마, 너는 지금 충분히 아름답게 발효되어 가는 중이니까 "
2026-05-22      홍유식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09
2026-05-20
lhj7.png
함께 있다는 안전한 감각 - 고치려 하나요, 곁에 있어주고 있나요?
어떤 노래는 멜로디가 아니라 공기로 기억됩니다.Coldplay의 〈Fix You〉가 흘러나오면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어깨가 조금 내려앉고, 숨이 한 박자 늦어집니다. 그 노래가 하나의 장면과 함께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퇴근길이었습니다.전화가 울렸고, 화면에 오래된 친구의 이름이 떠 있었습니다. 받자마자 조용한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다 친구가 말했습니다."네 목소리를 들으니까… 눈물이 나."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상황을 바꿔줄 수도 없었고, 괜찮다는 말을 쉽게 건넬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거기 있었습니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친구의 숨소리를 들으면서.한참 뒤에 친구가 말했습니다. "고마워."나는 아직도 그날 내가 무엇을 해준 건지 모릅니다. 그냥 전화를 끊지 않은 것뿐이었는데.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 보일 때, 본능처럼 무언가를 하려 합니다.더 좋은 방향을 알려주고 싶고, 덜 아픈 선택지를 건네주고 싶고, 어떻게든 다시 괜찮아지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 마음은 분명 진심이고, 분명 사랑입니다.하지만 가끔은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 필요한 것은, 내가 건네는 해결책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다'는 감각이 아닐까.〈Fix You〉의 가사는 이렇게 말합니다."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 will try to fix you."오래 듣다 보니, 나는 이 문장을 다르게 듣게 되었습니다.고치는 것과 곁에 있는 것. 그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몇 해 뒤, 이번엔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40대라는 나이를 들고, 애써 괜찮은 척 버티던 날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나는 길 한복판에서 아이처럼 울어버렸습니다.그때 친구는 아무 조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들어줬습니다. 판단하지 않았고,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내 속도로 울게 놔뒀습니다.돌이켜보면, 그 순간 내게 필요했던 건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네 옆에 있어"라는 감각이었습니다.코칭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사람은 누군가가 억지로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냥 함께 있어줄 때 스스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안전하다는 감각이 생겼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돌아옵니다.어쩌면 진짜 위로는 누군가를 더 나은 방향으로바꾸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다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빛이 되어주는 것.지금도 〈Fix You〉가 흘러나오면 나는 그 퇴근길을 떠올립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무언가가 되어줬던 그 밤을.지금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고치려 하고 있나요. 아니면 그 사람 곁에 있어주고 있나요.
2026-05-20      이현주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85
2026-05-19
이은아-3.5-4.5web.jpg
두려움이라는 맹수를 길들이는 완벽한 방법:
살다 보면 누구나 거대한 벽 앞에 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야심 차게 준비하는 비즈니스,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험, 무거운 프로젝트 앞에서 우리는 숨이 막히는 두려움을 경험하곤 합니다.내 앞길을 가로막는 과제들은 마치 거대한 맹수처럼 우리를 집어삼킬 듯 으르렁거립니다.우리는 어떻게 이 두려움 앞을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요?"망하면 여행이나 가지 뭐!"사실 이 말은 상황에 따라 우리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어떨 때는 내 간절한 노력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불편해지기도 하고,어떨 때는 꽁꽁 언 마음을 녹이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하죠.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내 절박함을 외면하는 '단순한 회피'나 '포기'로 들릴 때는 서운함과 반발심이 밀려옵니다.하지만, "네가 실패하더라도 너의 가치는 변함없어. 어떤 결과든 내가 네 곁에 있을게"라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수용'으로 느껴질 때, 이 말은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강력한 구명조끼가 됩니다.심리학에는 '최악의 상황 직면하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억지로 잘 될 거라 믿기보다 "가장 최악의 결과가 뭘까?"를 끝까지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최근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한 리더가 있었습니다.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던 그(그녀)에게, 배우자가 따뜻하게 한마디를 건넸습니다."괜찮아. 정 안 되면 다 접고 나랑 여행이나 다니며 살면 되지."그 순간, 그(그녀)를 짓누르던 거대한 바위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최악의 경우엔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수용하자,실패에 대한 공포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입니다.두려움은 '최악을 거부할 때'힘을 얻습니다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는 강박입니다.하지만 스스로에게 "그래, 최악의 경우엔 다른 길을 가면 돼"라고 허락하는 순간, 두려움은 힘을 잃습니다.나를 잡아먹을 것 같던 맹수들은 길가의 고양이처럼 작아지고, 우리는 다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망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심리적 안전기지는 가장 든든한 무기가 되어줍니다.지금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하신가요?그렇다면 눈을 감고 당신의 '최악'을 마주해 보세요. 생각보다 그 최악은 당신의 삶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안 되면 말지 뭐!"라는 배짱과 여유, 그것이 어쩌면 압박감 속에서도유연하게 길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숨겨진 힘일지도 모릅니다.
2026-05-19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37
2026-05-06
(26.04.24)-17-김향숙-A컷-메인1 - 복사본.jpg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우리는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 애씁니다.나와 꼭 맞는 누군가를 만나고, 갈등 없는 팀워크를 발휘하며,모두에게 인정받는 존재가 되기를 꿈꿉니다.하지만 현실의 관계는 늘 예측을 벗어나고, 우리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서툴게 흔들리며 방황합니다.왜 우리는 관계 안에서 이토록 자주 길을 잃는 것일까요?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에서 신은 이렇게 선언합니다.“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주인공 파우스트는 더 높은 지식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갈망하고,그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와 유혹, 그리고 방황을 겪습니다.그의 방황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살아있으며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누군가와 잘 지내보려 노력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 하기에 충돌이 발생합니다.갈등이 두려워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방황할 일도 없겠지만,그 관계에는 어떤 생명력도, 성장도 깃들지 못합니다. 우리가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있다면,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며함께 일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면서도,동시에 "모든 행복 또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습니다.방황의 끝에 파우스트가 도달한 곳은 결국 타인을 위한 헌신과 연결의 삶이었습니다.관계를 잘 맺으려는 우리의 서툰 노력들이 모여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지만,그 과정이 있어야만 비로소 '나'와 '너'를 넘어선 '우리'라는 단단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소통은 방황하는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곁을 내어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내가 옳다는 확신을 내려놓고 상대의 진동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방황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닌 탐험이 됩니다.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이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혼란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필연적인 소용돌이일 뿐입니다.인생과 일터에서의 관계는 어쩌면 정해진 목적지가 없는 긴 여정일지도 모릅니다.지금 관계 때문에 막막하고 방황하고 있다면,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그 방황은 당신이 더 깊은 연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가장 정직한 지표입니다.우리는 그저 그 흐름 안에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잘 흘러가면 됩니다.   성찰질문: 요즘 당신을 가장 방황하게 만드는 관계는 누구와의 관계인가요?                그 방황이 당신에게 건네는 "더 나아지고 싶다"는 진심 어린 목소리는 무엇인가요?
2026-05-06      김향숙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95
2026-05-01
이은아-3.5-4.5web.jpg
외면하고 지나쳐 온 마음속 카페에서 발견한 것은.
칼 융(Carl Jung)은 꿈을 가리켜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 마음은 스스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양한 상징을 빌려 말을 건넵니다.어느 날 꿈속에, 나의 성장을 이끌어주는 지혜로운 스승과 오래전 소원해진 두 명의 친구가 동시에 등장했습니다.장면은 어느 따뜻한 카페로 이어집니다. 스승님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지난번엔 제자가 샀으니, 이번엔 내가 살게요." 웃으며 샌드위치를 나누는 꿈속의 장면은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닙니다.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거나 에너지를 기대기만 하던 시절을 지나, 스승과 동등하게 지적 자양분을 주고받는 어른으로 성장했음을 의미합니다.우리의 내면은 이렇듯 타인과 건강하게 에너지를 교환할 만큼 단단하고 성숙해졌음을 스스로 축하하곤 합니다.하지만 우리의 마음이라는 동네에는 햇살 드는 밝은 카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길 건너편의 또 다른 카페에는 오래전 소원해진 친구들이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융 심리학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가 외면했거나 억눌러둔 내면의 껄끄러운 감정, 즉 '그림자(Shadow)'라고 부릅니다.우리는 보통 그 불편한 자리에 합석하는 대신, "나 저쪽에 가봐야 해"라며 인사만 남긴 채 나를 편안하게 반겨주는 사람들의 무리로 향합니다.그것은 잘못된 회피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자아의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하지만 발걸음을 돌리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그래?" 하며 내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원해진 친구의 서운한 눈빛이 마음에 남는다면, 그것은 무의식이 우리에게 보내는 다정한 신호일지 모릅니다."충분히 단단해진 지금이라면. 뒤에 남겨두고 온 그 서툰 감정들에게도 한 번쯤 눈길을 줄 수 있지 않을까?"당장 그 불편한 감정과 마주 앉아 긴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내 마음 한구석에 그들이 여전히 앉아있음을 객관적이고 포용 어린 시선으로 관찰해 보는 것.내 마음속 모든 낯선 손님들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하고 넓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2026-05-01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41
2026-04-21
이은아-3.5-4.5web.jpg
비언어적 태도가 말해주는 진짜 '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통합니다.그런데 가끔, 대화의 자리에서 말보다 더 큰 소리로 본마음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마주합니다.바로 무의식중에 흘러나오는 '비언어적 태도'를 통해서 말이죠.자기 객관화의 부재, 남들은 모를 거라는 착각네 사람이 모인 회의 자리를 떠올려 봅니다.업무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임에도, 유독 한 사람에게만 시선을 주지 않고 철저히 배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는 나머지 두 사람과 눈을 맞추며, 특정 한 사람과는 의도적으로 연결을 끊어버립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수많은 모습의 에고(Ego)가 삽니다.상대를 통제하려는 에고, 응징하고 무시하려는 에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관찰자 등이죠.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 마음의 무대 위에 어떤 에고가 올라와 통제권을 쥐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겁니다.그날 그 회의실에서는, 상대를 무시하고 응징하고 싶어 하는 '통제하려는 에고'가 무대 위로 불쑥 올라와 서투른 방어기제를 작동시킨 거죠.정작 본인은 자신의 무의식적인 태도를 남들이 모를 것이라고 착각한 채 말입니다.상대를 향한 응징, 그 서툰 연극을 수용하다무대 위를 장악한 에고는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며 상대를 교묘하게 벌주고 있다고 착각할지 모릅니다.하지만 한 걸음 물러선 소외된 사람의 관찰자 눈에 비친 이 상황은 어떨까요?그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우월해지기 위해 애쓰는 한 편의 '서툰 연극'일 뿐입니다."지금 당신의 행동이 얼마나 훤히 보이는지 알고 있나요?"목구멍까지 질문이 차오르지만 소외된 사람의 관찰자는 묻지 않습니다.그 나름의 최선이자,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막이었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반응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미성숙한 태도를 마주할 때, 우리 안에서도 불쑥 감정이 올라오곤 합니다.상대의 태도에 자극받아 내 안의 '분노한 에고'가 무대 위로 뛰어오르려 충동질을 하죠.하지만 이때 필요한 건 억지로 화를 참거나 감정을 누르는 게 아닙니다.그저 내 안의 '관찰자'를 무대 위로 올려보내, 상황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겁니다.'아, 우리 내면에는 저런 유치한 에고가 있지. 저 사람은 지금 응징하려는 에고에게 무대를 내어주고 서툰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구나.'상대의 행동에 동기화되어 감정을 소모하는 대신, 무대 밖의 관객이 되어 객관적이고 포용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는 겁니다.진정한 성숙은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결국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성숙함은, 지금 내 마음의 무대 위에 어떤 에고가 서 있는지 스스로 '알아차리는' 능력이 아닐까요?누군가의 미성숙함에 마음이 소란스러워질 때가 있습니다.하지만 그들의 서툰 연극에 같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는 대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관찰자의 시선을 가졌다면.우리는 한 차원 더 깊고 성숙한 존재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오늘, 누군가의 투명한 에고 앞에서 고요히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해 낸 당신의 성숙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2026-04-21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03
2026-04-16
사진_홍유식 1.jpg
누군가의 불안함과 마주할 때
  "저, 이 인터뷰가 처음이에요." 10~12살 정도 되어보이는 애띤 어린 소녀 기자가 세계적인 대배우 케이트 윈슬렛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합니다. 이 짧은 순간, 케이트 윈슬렛이 보인 반응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선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태도였습니다. 그녀는 소녀의 눈을 맞추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첫 인터뷰라고요? 알겠어요. 그거 알아요? 우리가 지금부터 할 이 인터뷰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인터뷰가 될 거에요.왜 그런지 알아요?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정했거든요.지금 여기서 당신과 내가 정한 거예요.이 인터뷰가 정말 환상적일 거라고요.그리고 당신은 뭐든지 편하게 물어봐도 돼요.긴장할 필요도 없어요.다 잘 될 거니까요.충분히 잘 할 수 있어요.(You got this)좋아요, 이제 시작해볼까요?윈슬렛의 따뜻하면서도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와 말투는 처음 인터뷰를 기다리는 소녀의 긴장을 녹여주고 있습니다.긍정적인 결과는 결국 상호간의 의지와 마음(결정)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요.인터뷰 시작 전부터 충분한 라포를 형성하여 대화의 질을 높이려고 하고 있죠.따뜻하고 아무런 벽이 느껴지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로 말이죠"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인터뷰가 될 거야.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방금 결정했으니까. 넌 무서워할 필요 없어. 다 잘 될 거야. 넌 할 수 있어." 이 짧은 말 속에는 우리가 일상과 관계 속에서 성찰해 보아야 할 깊은 울림이 숨어 있습니다.마지막까지 밝은 미소와 함께 "좋아요, 이제 시작해 볼까요?"라며 소녀가 주도적으로 인터뷰를 이끌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짧은 영상이었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문해봐야 합니다.   나는 타인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는가? 소녀의 불안한 고백에 케이트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충분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했습니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방이 자신의 취약성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안전하고 지지적인 환경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실수나 두려움을 고백할 때,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나요?   나는 지위와 권력의 차이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세계적인 대스타와 인터뷰를 처음 해보는 어린 소녀 사이에는 엄청난 권력과 지위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케이트 윈슬렛은 우월감을 내세우는 대신, 따뜻한 인류애와 존중을 바탕으로 그 격차를 스스로 허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상대를 통제하는 데 쓰지 않고, 온전히 상대방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터나 가정에서 내가 가진 지위, 나이, 경험의 우위를 은연중에 내세워 누군가를 위축시키고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는 서로의 잠재력을 믿어주고 있는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인터뷰가 되기로 결정했으니까요." 이 말은 네가 혼자 잘해야 한다는 평가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멋진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강력한 연결과 믿음의 선언과도 같습니다. 누군가의 재능과 노력을 믿어주고 존중할 때,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죠. 오늘 하루, 당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가 서툴고 불안한 '처음'을 겪고 있다면, 케이트 윈슬렛처럼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괜찮아, 우리가 함께 멋지게 해낼 거니까. 넌 할 수 있어."   당신의 이 따뜻한 공감과 지지의 한마디가 누군가의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누구가에게 이런 존재가 되어줄 준비가 되었나요?https://www.youtube.com/shorts/NpIXQUHB2JU
2026-04-16      홍유식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13
2026-04-07
(26.04.24)-17-김향숙-A컷-메인1 - 복사본.jpg
떨림과 울림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직장이라는 톱니바퀴 속에서, 혹은 사회라는 거대한 그물망 안에서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고 부딪힙니다.어떤 관계는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지만,어떤 관계는 우리를 한없이 작게 만들기도 합니다.그 수많은 관계의 교차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바로 내 안의 '떨림'과 타인에게 전해지는 '울림'입니다.현대 물리학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다고 말합니다.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물체조차 저마다의 주파수로 떨리고 있죠.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낯선 동료와 첫 인사를 나눌 때우리는 미세한 긴장과 설렘을 느낍니다.그것은 상대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나의 정직한 '떨림'입니다.하지만 사회적 지위나 역할에만 매몰되다 보면이 순수한 떨림은 사라지고, 기계적인 마찰음만 남게 됩니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를 말했습니다.모든 존재가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려는 힘이죠.비즈니스에서의 관계 또한 서로의 코나투스가 만나는 지점이어야 합니다.나의 떨림이 상대의 결에 닿아 기분 좋은 공명을 일으킬 때,그것은 비로소 '울림'이 됩니다.나의 진심 어린 경청이 동료의 마음을 움직이고,나의 단단한 철학이 조직의 방향을 바꾸는 파동이 되는 과정.그 울림이야말로 우리가 일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성취입니다.진정한 관계의 성장은나의 떨림을 감추지 않고, 상대의 울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가면(페르소나) 뒤에 숨어 계산적인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나만의 고유한 진동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내가 먼저 올바른 주파수를 낼 때,주변의 사람들도 그 진동에 반응하여 함께 공명하기 시작합니다.그때 비로소 조직은 차가운 기계가 아닌,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냅니다.인생은 어쩌면 끝없는 파동의 이어짐일지도 모릅니다.나의 떨림이 누군가에게 선한 울림이 되고,그 울림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를 성장시키는 순환.그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나아가면 됩니다.당신의 진동이 비록 작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가장 정직한 떨림이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드는 법이니까요.   [성찰질문] 당신이 오늘 만난 사람들에게 전한 가장 정직한 '떨림'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가장 깊게 남아있는 타인의 '울림'은 무엇인가요?
2026-04-07      김향숙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23
2026-04-03
이은아-3.5-4.5web.jpg
내면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두려움은 사실이 아니라 습관입니다!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좁은 방 안에 가둡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밖은 너무 위험해." "아직 나갈 준비가 안 됐어."하지만 진실을 마주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믿었던 그 문은, 사실 단 한 번도 잠긴 적이 없습니다.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은 굳게 닫힌 문이 아니라, 문이 닫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오래된 생각의 습관'일 뿐입니다.' 마음의 소음과 거리를 두세요!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면, 내면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올 수 있습니다."이게 될까?" "실패하면 어쩌지?"이 목소리를 당신의 '진심'이나 '직관'으로 착각하지 마세요.이것은 그저 변화를 싫어하는 뇌가 만들어낸 '두려움이라는 습관'이 작동하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와 싸우려 하지 마세요.그저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처럼,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처럼무심하게 바라보세요."아, 내 마음이 또 옛날 습관대로 걱정하고 있구나."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순간,알게 될 것입니다.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이며,언제든 그 그림자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요. 지도가 없는 곳으로 걸어가는 용기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정해진 지도가 없을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기억해 주세요.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지도가 없는 곳,아무도가보지 않은 길 위에 숨겨져 있습니다. 불확실함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초대장입니다.완벽한 준비는 없습니다.그저 열려 있는 문을 믿고,가볍게 한 걸음을 내디디세요.마음속 상상은그 문밖에서 현실이 될 준비를 마치고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6-04-03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96
2026-04-01
사진_홍유식 1.jpg
말 한마디의 기적
https://www.youtube.com/watch?v=Hzgzim5m7oU약간의 스산함이 느껴지지만 한가로운 광장, 사람들의 웃는 모습, 그리고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어느 오후,  노구의 한 시각장애인이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옆에는 종이 상자로 만든 낡은 팻말이 놓여 있었죠.  팻말 안에는 이런 문구가 보입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I'm blind, Please help ~)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앞을 무심히 스쳐 지나갑니다.  아주 가끔 누군가 동전 몇 닢을 적선할 뿐이었습니다. 그때, 한 여성이 가던 길을 멈추고, 시각장애인을 향해 다가옵니다.  그녀는 노인의 팻말을 뒤집어 펜으로 새로운 문장을 적어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다시 길을 떠납니다. 당시 영문을 모르는 노인은 여성의 구두만을 만진 채 그녀의 행동에 의아해했습니다.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거리를 바삐 지나던 사람들이 시각장애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빈 통에 동전이 쌓이는 경쾌한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죠. 순식간에 빈 통은 동전으로 가득차고 있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아까 팻말에 문장을 써 놓았던 여성이 다시 노인 앞에 섰습니다. 구두를 만지는 노인, 그리고 이 사람이 아까 그 여성임을 알게 되자 물어봅니다. " 팻말에 무어라고 쓰신 건가요? " 그러자 그 여성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 똑같이 썼어요.. 다만 다른 글자로요 "  눈앞에서 점점 사라지는 여성에게 노인은 '고맙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과연 팻말에는 어떤 마법의 주문이 적혀 있었던 걸까요? "오늘은 참 아름다운 날이네요. 하지만 저는 그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답니다." ( 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 ) 이 짧은 영상 'The Power of Words(말의 힘)'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노인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상황도 그대로였죠.  하지만 '단어'가 바뀌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단순히 동정을 구하는 메마른 말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의 아름다움을 함께 공감하게 만든 따뜻한 말 한마디는,  굳게 닫힌 사람들의 마음에 큰 파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내뱉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가 무심코 쓰는 언어가 어떤 온도를 가졌는지 돌아보는 시간은 부족합니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에게 우리는 지금 어떤 말을 건네고 있나요? 그 말 한마디는 지금 몇도를 가르키고 있을까요?  "친절한 말은 짧고 하기 쉽지만, 그 울림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 마더 테레사 – 지금 나의 상황이 답답하고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가장 먼저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말'을 조금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왜 늘 이 모양일까"라는 날 선 말 대신,  "오늘 하루도 묵묵히 버텨낸 내가 참 대견하다"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보는 겁니다.   만약 지인이 몸과 마음이 아픈 상황을 목도했다면, 그냥 형식적인 위로의 말 한마디 보다는,  공감의 언어로 진심이 담아, 그러면서도 솔직함이 뭍어나는 말로 대신해 보는 건 어떨까요? 가식을 도려낸 언어는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결국 우리가 쓰는 언어가 곧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됩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세상은 어떤 단어들로 채워져 있나요?  당신이 건네는 다정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작은 기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6-04-01      홍유식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18
2026-03-25
이은아-3.5-4.5web.jpg
바위와 다투지 않는 물의 지혜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 에고를 넘어 통합으로누군가의 실수나 부족함이 눈에 보일 때, 우리 안에서는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꿈틀거립니다."거봐, 내가 뭐랬어?""약속을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야겠어."상대방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잘못을 낱낱이 지적하여 '확인 사살'을 하고 싶은 마음. 우리는 그것을 '정의'라고 착각하곤 합니다.가만히 들여다보세요.그것이 과연 정의일까요? 그것은 나의 옳음을 증명하고,상대방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에고(Ego)의 쐐기'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 혹은 내면이 성숙한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 순간 멈춰 섭니다.상대방의 실수를 꼬집어 관계를 '분열'시키는 대신, 그 상황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통합'으로 이끄는 길을 선택합니다.이것은 비굴한 타협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내려놓음'입니다.나의 감정, 나의 옳다는 주장,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구를 스스로 내려놓고 오직 '전체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물이 아래로 흐르며 바위를 만나면 부딪쳐 깨부수는 대신 부드럽게 휘감아 돌아가듯, 우리는 뻣뻣한 훈계 대신 부드러운 배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토록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만드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그것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내면의 스승'이 보내는 신호입니다.에고가 소리칠 때, 조용히 다가와 더 큰 그림을 보게 하는 존재. 나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내 안의 목소리입니다.오늘, 누군가의 실수 앞에서나의 에고를 잠재우는 '아름다운 내려놓음'을 선택해 보세요. 그것은 곧 우리 모두를 승리하게 만드는가장 위대한 '통합'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2026-03-25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17
2026-03-12
이은아-3.5-4.5web.jpg
왜 우리는 굳게 닫힌 문만 두드리고 있을까요? : 반응(Reaction)을 넘어 창조적 응답(Response)으로
"반응(Reaction)"하는 사람 vs "응답(Response)"하는 사람 조직이나 관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 할 때, 가장 넘기 힘든 벽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외부의 반대보다 더 무거운 것은,그 반대가 두려워 시작조차 망설이게 되는 '회피(Postponement)'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라며 문제를 덮어두는 것이 당장은 평화로워 보일 수도, 때로는 갈등을 잠시 미루어 두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그 모호한 경계를 넘어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전하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막상 용기를 내어 제안을 해도, 우리는 흔히 이런 피드백을 마주하곤 합니다. "우리 조직 문화와는 맞지 않습니다." "예산이 부족합니다."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이때 우리는 종종 안타까운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상대의 반대를 넘어서기 위해 더 많은 논리와 데이터를 가져와 '논쟁'을 벌이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자칫 서로의 에너지만 소진하는 '소모전(Exhaustion)'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잠시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상대방의 반대를 좀 더 들여다 보면..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즉각적인 반응(Reaction)'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변화 자체가 싫다기보다, 익숙한 울타리를 지키고 싶은 본능적인 마음이 앞섰을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과 맞서 싸우기보다는,조금 다르게'창조적인 응답(Creative Response)'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반응(Reaction)'이 상대의 말에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방어적 태도라면, '응답(Response)'은 상대의 의도를 수용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건네는 주체적 태도입니다. "안 된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포기/반응) "왜 안 된다고만 하십니까?" (공격/반응) "우려하시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방식 대신, 이런 새로운 형태의 접근은 어떠신가요?" (창조적 응답) 상대가 과거의 기준을 이야기할 때, 같이 과거로 끌려들어 가기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굳게 닫힌 문을 계속 두드리는 대신, 옆에 있는 새로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것.그것이 지혜로운 소통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2026-03-12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97
2026-03-11
사진_홍유식 1.jpg
몸의 한기를 녹이는 공감의 온도
안녕하세요,​어젯밤 끙끙 앓았습니다. 앓았다는 표현보다는 몸살기에 한기를 느낀 나머지 자는 내내 계속 몸을 뒤척였던 기억이 나네요. 지난 토요일, 자정 무렵 봄의 기운에 취해 오랜 바람을 맞으며 걸은 탓에 얻은 선물이 아닐까 싶네요. 여러분은 아플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어느 책 구절에서 말하길 '내가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건강하다는 신호'라고 하네요. 정말 몸이 안 좋으면 아픔도 더디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아플 때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면 서럽지 않죠. 몸이 안 좋을때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요.​그렇다면 주변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는 경우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위로해 줄 수 있는 용기가 있나요? ​위로해 주고 싶은 나의 진심을 느낄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살며시 다가가 보세요. 마음의 치유는 몸이 치유되는 것과는 다릅니다.몸이 아프면 먹어야 하는 약이 정해져 있지만,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것에는 따로 정해진 약이 없습니다.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약은 따로 조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왜냐하면 마음의 고통은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때론 아픔을 호소하는 본인조차도 진짜 이유를 모릅니다.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 줄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아픔을 내가 함께 느껴보는 것입니다. 같이 공감해 주고 이해하려고 다가가는 것이죠. 그 공감의 노력이 서로의 정신적 교감을 만들어 줍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는 큰 힘이 되고, 때로는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정답'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합니다. 하지만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세련된 조언이나 명쾌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저 나의 온기를 나누어줄 수 있는 '곁'이면 충분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묵묵히 잡아주는 손길 하나,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짧은 한마디가 상대방의 무너진 마음의 성벽을 다시 세우는 주춧돌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픈 마음의 '심리적 지분'을 나누는 행위이자, 타인의 고통이라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용기 있는 "노크'입니다.몸살로 몸을 뒤척이며 느꼈던 그 서늘한 한기는 내 곁에 있는 온기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몸의 아픔이 나에게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면, 마음의 아픔은 나에게 '사랑할 대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나긴 밤도,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의 아픔에 주파수를 맞춰줄 때 비로소 그 밤은 '고립'이 아닌 '연대'의 시간이 됩니다.마음의 상처에는 유통기한이 없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공감의 서곡'은 결국 나 자신을 치유하는 피날레로 돌아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며 전해준 따뜻한 말들이 내 안의 결핍을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이 주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맛보게 됩니다.이제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오늘 나는 누구의 아픔 곁에 머물렀나요? 그리고 그 아픔 안에서 소리 없이 앓고 있던 '진짜 마음'에게는 어떤 위로를 건넸나요? 몸의 한기가 가시고 나면 찾아오는 온기처럼, 우리의 공감이 누군가의 시린 계절을 녹이는 작은 난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긴 밤을 지나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이 어제보다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아픔을 통해 서로의 연결됨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개가 짙을수록 해는 더 뜨겁게 타오를 준비를 하듯, 우리의 아픈 기억들 또한 더 선명한 내일을 위한 눈부신 전주곡이 될 것입니다.
2026-03-11      홍유식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04
2026-03-03
이은아-3.5-4.5web.jpg
좋은 관계를 위해 가끔은 '불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종종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합니다. 상대방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아도,그 말이현실성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분위기를 깨기 싫어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곤 합니다.하지만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방관'일지도 모릅니다.서로의 귀한 시간을허공에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까요.진짜 건강한 관계는무조건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때로는 '정확한 방향'을 가리켜주는 용기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1. '침묵의 동조'가 만드는 함정상대가 자기 자랑에 취해 있거나, 실현 불가능한 약속으로 주변을 어지럽힐 때,우리는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낍니다.하지만 그 순간"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기엔 상대의 따가운 시선이 두렵습니다.그래서 우리는'침묵의 동조'를 선택합니다.하지만 리더, 혹은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은알아야 합니다.지금의 이 '가짜 평화'가결국엔우리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에너지 뱀파이어'가 된다는사실을요.2. 불편한 눈빛을 견디는 힘이제는 그 익숙한 흐름을 끊어낼 때입니다.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주저하는 마음(두려움)을 이기고,대화의 물꼬를'현실'로 돌려놓아야 합니다."그래서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뭔가요?""뜬구름 말고,땅에 발을 딛고 걸어봅시다." 그 순간상대방은 당황스러운 혹은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때상대의 눈빛 뒤에 숨은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알아차림과그 '잠깐의 불편함'을 견뎌내며'나'의 긍정적 의도를솔직하게 전한다면이 상황은 어떻게 변할까요? 3. 건강한 '상호 의존'의 진짜 의미우리는 흔히 '의존'을 나약한 것으로 생각하지만,진정한 파트너십은'건강한 상호 의존'에서 나옵니다.여기서 의존이란감정적으로 기대는 것이 아닙니다.내가 환상에 빠져 있을 때 나를 현실로 잡아당겨 주고,방향을 잃었을 때 쓴소리로 길을 잡아주는 것.서로가 서로의'현실 감각'이 되어주는 것,서로에게 '단단한 땅'이 되어주는 것,이것이야말로 "성숙한 관계의 핵심이 아닐까요?"
2026-03-03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17
2026-02-20
이은아-3.5-4.5web.jpg
어느 현명한 요리사가 제자를 떠나보내는 특별한 방법
스승을 떠나 독립을 생각하는 제자가 있습니다.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앞둔 그의 마음 한구석엔 설렘보다 묵직한 돌덩이가 먼저 자리 잡았습니다. 바로 '죄책감'입니다.나를 이끌어준 스승에게 미안한 마음과 마치 배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있는 제자가 뽑은 3장의 타로 카드[통제], [완성], [도약]이 카드들의 흐름과 유사한어떤 요리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자신의 일을 묵묵히 사랑하는 한 요리사가 있었습니다.그는 제자들이 일을 배워서 독립하겠다고 찾아오면, 서운해하거나 경계하는 대신 따뜻하게 격려해주곤 했습니다.주변 사람들이 "바로 근처에 경쟁자가 생기는데 괜찮냐"고 걱정스레 물으면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제자가 나가서 내 가게 근처에 식당을 차린다면 그건 경쟁이 아닙니다. 내 요리의 맛과 철학을 이어받은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니, 오히려 내 요리의 세계가 더 넓어지는 것이지요. 그 친구는 나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나의 씨앗을 세상에 심으러 가는 겁니다."이 담백한 대답이 바로 타로 카드의 [완성(Completion)]이 보여주는 지혜입니다.제자가 스승의 울타리 안에만 머문다면 그 가르침은 그곳에 고여있게 됩니다.하지만 제자가 문을 열고 나가 [도약(Breakthrough)]하여 세상에 그 가르침을 펼칠 때, 스승의 철학은 비로소 더 넓은 곳에서 꽃을 피웁니다.출처: 오쇼젠 카드스승의 이 깊은 뜻을 전해 들은 제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죄책감으로 무거웠던 가슴은 스승을 향한 존경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뜨거운 용기로 벅차올랐습니다.스승의 믿음과 응원은 제자를 단지 기술만 배운 요리사가 아닌, 스승의 철학을 잇는 진정한 장인으로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우리는 모두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 속에 살고 있습니다.누군가의 독립과 성장을 경쟁이나 배신으로 규정짓지 않고, 서로의 세계를 넓혀주는 '확장'으로 바라봐주는 것.그 따뜻한 상호 존중의 문화가 제자를, 스승을,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를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2026-02-20      이은아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27
2026-02-11
사진_홍유식 1.jpg
마음을 이어주는 매듭
지인의 생일을 목도하게 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커피나 케이크 쿠폰을 주고받습니다.그것은 어쩌면 관계를 지탱해 주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자,서로의 안부를 묻는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릅니다.하지만 오늘 이후 지인의 생일에는 카카오 선물하기 버튼 검색대신,누군가의 머리맡에 놓일 책 한 권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요.최근 제가 겪은 작은 기적은 바로 그 사소한 '바꿈'에서 시작되었습니다.한때는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던,꽤 오랜 인연의 선배가 있었습니다.하지만 길고 긴 고립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졌어요.창문 너머로만 계절을 확인하듯 가끔 카톡만 주고받을 뿐,2년이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죠.다시 연락을 하자니 미안함이 앞서고, 모른 척하자니 먼가 아쉬움이 남는,그런 끊어지기 직전의 애매한 매듭의 상태. 아마 누구나 마음속에 이런 관계를 연상케 하는 한, 두 명은 품고 살아가시겠죠? 고민 끝에 찾아온 선배의 생일날,저는 간단한 메시지와 함께 정성스레 고른 책 한 권을 보냈습니다.기교 섞인 축하의 말보다 선배가 읽을 책 한 권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선배는 제 진심을 단번에 읽어내신 듯, "당장 얼굴 보자"며 톡을 보내오셨습니다. 만나기로 한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비 오는 밤의 여운을 품은 채, 우리는 함께해 온 기억들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였습니다.2년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만남의 시간은 서로의 숱한 이야기들로 금세 채워졌어요.헤어진 다음 날, 선배는 저의 선물에 화답하듯 제게 책 한 권을 보내오셨습니다.그러고는 "아무리 바빠도 분기에 한 번은 꼭 보자"는 다짐 섞인 약속을 덧붙이셨지요.만약 그날 제가 그저 흔한 커피 쿠폰 한 장을 보냈다면,우리 사이에 이런 밀도 있는 만남의 시간이 흐를 수 있었을까요.소박한 책 한 권이었지만, 그것은 선배의 마음을 열어준 마스터키였습니다. 그날의 책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어쩌면 끊어질 수도 있었던 마음과 마음을 다시 잇는 단단한 매듭이 되어준 것이 아닐까요....매일 아침 카카오톡을 열면 어김없이 생일자 목록이 우리를 반깁니다.오늘은 늘 주고받던 익숙한 스벅커피쿠폰 대신,상대방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머물 책 한 권을 골라보세요. 그 작은 선택이 당신의 삶에 예기치 못한, 초록빛이 무성한 인연의 숲을 만들어갈지도 모릅니다.
2026-02-11      홍유식 코치
댓글수 0 조회수 109